밤눈박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정사가 아니며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냥 재미로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본편을 즐기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접어두었습니다.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실수로나마 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메카루 레이는 이런 살인 게임이 탐탁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노쿠마가 선언한 살인 게임이라는 것이 실제로 벌어질 거라 보지 않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되라고 하는 가정에는 불만은 없었지만 그것이 이야기하는 현실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봉 학원은 일본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한 학교다. 세간의 눈에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는 곳에서 인질극을 벌인다니, 중동의 극단주의 테러리스트가 아닌 이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중동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목적이 성취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목숨또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모노쿠마에게서는 그러한 종류의 괴팍한 비장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곳에 갇힌 학생들이 보일 패닉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마냥 굴었다. 메카루는 모노쿠마가 보이는 태도에서 그들의 목적을 유추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범죄또한 어떻게 꼬여있던 나름대로의 이유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메카루는 이런 모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모노쿠마의 말대로 희망봉학원을 폐쇄하고 이러한 우습지도 않은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면 학교 외부에서는 이미 무장경찰들이 떼거지로 모여들어 이 목적을 알 수 없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테러리스트들의 끝은 대개 스스로가 맺던 남이 맺던 그들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대체 무슨 배짱인것인가.
그러나 회의를 소집하듯 식당으로 부른 킨조 츠루기는 모노쿠마의 설명이 기정사실이라는 듯이 여기며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했다. 또한 그를 위하여 단합을 요구했다. 모노쿠마의 헛소리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 갇혀버린 학생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기는 했지만 각자의 개성이 극도로 뚜렷한 탓에 회의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합쳐지기도 하며 난항했지만 결과적으로 킨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납득한 모양새였다.
물론 메카루는 킨조가 소집한 회의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단체생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치 않았다. 영화나 소설속에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나오는 성향이지만 단체생활은 이런 상황에서 생각보다 먹히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서로간의 쉬운 접근성은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약 그 기간이 짧다면 그 접근성으로 역으로 작용한다. 입장과 생각의 차이 덕택에 서로간의 알력만 늘어날 뿐, 분열이 일어나 모노쿠마가 원했던 드라마를 찍어주게 될 뿐이다. 만약 모노쿠마가 이야기했던 살인게임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 분쟁으로 인해 추론에 지장을 줄 뿐이다. 메카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가 참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클레이튼 교수와 나누었던 이야기속의 주인공도 그렇게 느꼈을까.
"메카루 레이, 하나 물어봐도 되나?"
잠시 벽에 기대어 생각에 잠겨 있었던 메카루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성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우에하라 킨지. 은발의 신부가 메카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도 저 회의가 마음에 들지 않던 모양이지? 신부님."
우에하라는 잠시 소맷자락을 가다듬으며 괴로운 듯 인상을 짓더니 이내 낌새를 지웠다.
"질문은 이쪽이 먼저했지만......굳이 따지자면 그렇다고 해야겠군.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지. '너도'라는 것은 메카루 회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건가?"
메카루는 우에하라에게 시선을 두지도 않은 채로 이야기했다.
"맞아. 회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 애초에 회의라기도 애매한 것이었어. 회의를 시작하기 전 가정부터 이상했거든."
"가정이라면?"
"살인 게임이 실제로 일어날리가 있냐는 거야. 조금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어때, 아니면 알면서도 떠보는 거야?"
메카루는 눈매를 날카롭게 갈아서 우에하라에게로 찌르듯이 시선을 보냈다. 얼음 송곳같은 그 시선에 우에하라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뻔 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퍼지는 분위기는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건조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지. 분명히 입학식부터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비현실적이니까. 그리고 네가 말하고자 하는 뜻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유비무환이라고들 하지."
"그렇다면 왜 회의에서 빠져 나온거야?"
우에하라는 조금 전 보여줬던 표정을 다시 한번 지어보였다. 그리고서는 목에 걸어 두었던 십자가를 만지작 거리더니 메카루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종교인이야. 네가 있는 곳은 철저한 이성이 주요한 덕목이지만 종교는 사람이 우선이야. 물론 학문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부터가 시작인 종교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무신론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네 합리적 사고라는 것은 나한테는 버겁군. 그렇지만 무신론같은 게 아니야. 메카루 레이, 너는 회의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가 회의 안건이 비현실적이라고 했었지? 내가 이 회의에서 꺼림칙함을 느낀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다."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인 메카루였지만 계속하라는 듯이 우에하라의 말을 끊거나 하지는 않았다.
"특히 킨조 츠루기. 초고교급 경찰이라 했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사적이었다. 뭔가가 일어나지를 않기를 불안해하는 표정이었지. 말이나 행동은 대범하듯이 언뜻 보이지만......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막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가 어른들을 대하는 얼굴이었어. 사랑에 목말랐지만 다시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잘 내색하지는 않아.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게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끔찍하지.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해를 할 수 없기에 가능성을 가장 하위에 둔 것이었지만 메카루는 조금은 우에하라의 말을 이해할 수 는 있었다. 킨조 츠루기의 행동 원리에서는 침착한 리더 쉽이라기 보다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메카루는 킨조의 권유에 대해 자신이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 이러한 연유였는 가에 대해 검토해보기도 한다.
"재미있네. 네가 살았던 삶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 그런 덕택에 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너는 이제 어떡할거지?"
메카루는 소란스러움이 커지는 식당안의 소리에 반응해 자리에서 떠나려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런 또래끼리의 단체생활에는 익숙치 않지만...... 사람들 틈바구니서 같이 있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어쩌면 킨조 츠루기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옳은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메카루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인간은 결국에는 본래 혼자서 사는 생물이다.
수많은 위협을 대비하기 위해서 생존법으로 단체생활을 개발해냈다.
태초적으로 자신이 생존하는 데에 자신이 있다면 누군가와의 협력은 필요없을 것이다.
메카루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