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후속작의 설정비화도 마지막인가요... 대미를 장식하는 캐릭터는 바로 작품의 흑막이기도 했던 산노지입니다.
산노지 역시 흑막으로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설정비화를 기대하시던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솔직히 산노지의 설정비화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설정비화라는 것이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있었던 이런저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주가 되는데, 설정이 복잡하고, 또 초기 구상 단계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많이 변화한 캐릭터일수록 쓸 내용이 많아지죠.
그런데 이 산노지 미카도라는 캐릭터는 구상 단계부터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은... 처음부터 흑막임을 박아두고 시작한 캐릭터답게, 메인 스토리 자체가 산노지의 계획 그 자체이고, 철저하게 스토리에 녹아들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스토리 그 자체"이기도 한 산노지는 그만큼 설정이 거의 고정된 채 작품을 만들었다는 거죠. 산노지를 구상하면서 메인 스토리도 같이 짠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때문에 얘기할 만한 내용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일단 당장 디자인부터도... 망토와 모자를 제외하면 그냥 와이셔츠에 넥타이, 바지가 끝인 상당히 간단한 복장을 하고 있고,(그래서 설정화에 넣을 것도 거의 없어서 글리치 텍스쳐 정도만 넣었습니다.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닙니다) 가면이 움직인다는 개성 때문에 묻혔지만 현실 산노지(인간 산노지)를 보면 이보다 개성없을 수도 없죠. 이제 보니 이 녀석, 완전 망토랑 가면 빨인데요??
그 외에 추가로 얘기하자면, 산노지의 모티베이션이 된 캐릭터는 크게 세 명이 있습니다.
(블레이블루 시리즈의 등장인물, 하자마)
첫 번째는 산노지의 보이스 소스의 주인이기도 한, 블레이블루 시리즈의 하자마입니다.
산노지의 보이스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을텐데, 그럴 수밖에요. 산노지의 그 깐죽대는 성격은 이 하자마의 영향이 굉장히 크거든요. 영향이 크다기 보다는, 아예 하자마의 보이스를 먼저 정하고 산노지의 성격을 정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죠.
둘 다 악역이고 존댓말을 쓰다가도 분노시 마구 욕설을 내뱉는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마인탐정 네우로의 등장인물, 전자인간 HAL)
두 번째는 마인탐정 네우로에 등장하는 전자인간 HAL입니다. 위의 하자마가 성격적인 모티브가 되었다면, 이 쪽은 설정적인 모티브가 되었죠. 인공지능이라는 점, 자신을 만든 아버지를 죽였다는 점, 심지어 죽인 이유가 아버지의 방법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어서였다는 점까지도요. 이렇게 보니 상당히 비슷하네요.
산노지 미카도라는 캐릭터를 인공지능으로 설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이 전자인간 HAL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상당히 재미있게 봤던 작품으로 작품 중반부 정도에 등장하는 빌런이지만 그 이후 빌런들보다도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실제로 HAL가 싸울 때가 네우로라는 작품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해요.
(동방 프로젝트의 등장인물, 하타노 코코로)
마지막으로 세 번째 모티브는 동방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하타노 코코로입니다. 동방을 아시는 분이라면 알겠지만, 코코로에서 따온 것은 산노지의 특징 중 하나인 "맨얼굴은 무표정인데 가면이 바뀐다" 라는 점이죠.
엄연히 말하면 코코로의 경우 가면의 표정이 바뀐다기보단 가면 그 자체가 바뀌는 거지만, 어쨌든 맨얼굴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어서 제 작품에도 사용해보고 싶었습니다. 산노지와는 상관 없지만, 이 코코로라는 이름은 후일 미츠메에게도 사용되었죠. 이제 보니 성인 하타노도 전작에서 사용되었네요!
산노지는 주인공과 마에다를 제외하고 작품의 최고 중요 캐릭터였다보니, 설정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덕분에 모티브가 된 캐릭터도 많네요.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얘기할 것이 거의 없으니, 이런 거라도....
■ 스테이터스
산노지의 스테이터스입니다.
이게 뭐냐고요? 산노지의 스테이터스입니다. (절대 귀찮아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산노지는... 제 작품 세계관 속에서 얼터 에고의 정점을 달리는 초고도의 인공지능이죠.
즉, "측정 불가" 라는 수치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카가린의 설정 비화 때 전투력도 측정 불가였죠?
그걸 제외하더라도 산노지는 상당히 신비주의적 느낌 자체가 캐릭터의 컨셉이라, 능력치 등을 이렇게 남기는 것도 인상적일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인간성은 E.. 혹은 그 이하입니다만(인간이 아니니까), 다른 스테이터스는 직접 상상해 보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 초기 디자인
산노지의 초기 설정화 프로토 타입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산노지 미카도라는 캐릭터는 구상 단계부터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이며, 산노지 만큼은 처음 구상한 그대로 가고 싶었습니다. 산노지의 설정을 변경한다는 건 곧 메인 스토리가 변경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산노지의 설정은 플레인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다만 지금과 차이점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일단 허리춤의 체인이 사라졌고, 가면 쪽 눈 밑의 문양도 원래 움직일 예정이었습니다만... 스탠딩을 만드는 과정에서 깜빡해서 없는 설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ㅠㅠ
본색 같은 경우 본편에선 조금 다른 형태로 구현되었죠.(챕터 6의 깨진 가면) 이건 사실 챕터 6를 만들면서 즉흥적으로 디자인해본 거라 이 때는 그런 설정이 없었을 거에요.
■ 기타
음;; 재차 말씀드리지만, 산노지에 대해서 얘기할 것은 적습니다. 이미 위에서 이 캐릭터의 설정비화에 대한 것을 거의 다 얘기 한 것 같네요.
산노지는 구상 단계부터 흑막이었고,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먼치킨이었으며 계획 자체도 완벽했죠. 애초에 "완벽"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카나데 아님ㅎ)였고 그것이 흑막 포지션과 시너지를 내며 무시무시한 강적이 될 심산으로 구상한 캐릭터이니까요.
그런데도 그 사기적인 능력과 상황을 만들어내고도 졌다면서, 꽤나 여러분께 비웃음을 사기도 한 산노지 군입니다만
사실 산노지의 파멸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산노지를 구상하면서 완벽함을 강조했던 것 이상으로, 동시에 최대한 추한 결말을 함께 구상했죠. 이는 게임 외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강대한 힘을 자신하고 절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대를 무너뜨릴 때의 그 카타르시스를 위한 장치... 산노지가 강력한 만큼, 최후에 그 산노지를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이 강해지는 겁니다. 흔한 스토리적인 클리셰죠.
뭐 그걸 제외하더라도 원체 단간론파라는 작품 자체가 흑막들이 먼치킨이지 않습니까? 사실 완벽을 강조한 것 치고는 전작의 흑막인 우츠로가 더 사기였고요.
이외에도 인간을 초월했다고 떵떵거리던 녀석을 인간의 힘으로 쓰러뜨린다던가... 아무튼 작품의 최종보스답게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녀석이죠.
참고로 가끔 질문 받는 것이, "산노지의 계획은 중간에 엄청난 훼방(카나데라던가, 요미우리 등)을 받았음에도 천운빨로 넘어갔는데 얼터 에고 치고는 너무 계산이 안일한거 아니냐" 라는 것이 있었는데,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 본편에 등장한 계획이 꼭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 작품 상에서 산노지가 운이 좋아서 넘어간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연찮은 결과" 조차도 산노지의 시뮬레이션 내에 있는 것이며, 이것조차 실패하더라도 산노지는 그 즉시 차선책을 준비하고 계획을 속행할 수 있습니다. 꼭 본편처럼 스토리가 흘러가지 않더라도 마에다가 우츠로화 된다는 결과는 기정사실이었던 거죠.
이런 산노지가 패배한 것은 작중에도 나오듯 단 한 가지 뿐입니다. 자기 자신의 디폴트 알고리즘을 이길 수 없었던 것 뿐. 결국 프로그램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죠. 보통 전 재 작품에 대단한 철학적, 상징적 요소는 가급적 넣지 않는 편인데, 산노지의 경우는 인간 찬가적 요소가 꽤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에요.
그림은 산노지의 어린 시절을 그려보았습니다. 그 고아원에 불을 지르던... 그 모습이죠.
몇몇 분들이 얼터 에고 산노지의 악행 때문에 인간 산노지는 상대적 정상인으로 보시던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두 인격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결국 인간 산노지가 얼터 에고와 같은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얼터 에고 산노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거에요.
■ 처형 도안
처형명 : SUPER PRESS IN THE WOODS는 산노지 미카도의 처형을 가리지 않는다
묶여 있는 산노지의 뒤로, 복싱 링, 호○와트 스타일의 고성, 담벼락, 빌딩, 그리고 목재로 된 작은 집이 차례차례 솟아오른다. 장면이 전환되고, 펀치 머신에 얼굴만 내밀고 인간 샌드백이 되고 있는 산노지가 나타난다. 장면이 전환되고,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좀비들에게 사지가 뜯기는 산노지가 나타난다. 장면이 전환되고, 넝마가 된 산노지가 한 차례 더 벽돌에 머리가 갈리고 있다. 장면이 전환되고, 걸레짝이 된 산노지가 빌딩 위에서 추락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이제는 산노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된 고깃덩어리가 아무도 없는 작은 판자집에 널부러져 있다. 어느 샌가 목재로 된 집에 불이 붙고, 삽시간에 불길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머지 세트장에도 불길이 번져 무너지기 시작하고, 불길과 함께 판자집을 덮치며 화면이 암전된다.
보이드 처형의 그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처형입니다.
사실 산노지의 처형 도안으로 무엇이 좋을까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역시 흑막의 처형은 지금까지 나온 검정들의 처형 종합 선물세트인 편이 가장 좋은 것 같네요. 엄연히 따지면 니지우에는 검정이 아니었지만, 이 경우 쌍둥이에게 특화되어 있는 "멜로디 리듬 파이널 데스 콘서트" 보다는 보이드에 중점을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채택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로써 약 두 달에 걸친 설정비화가 마무리 되었네요.
솔직히 설정비화... 갈수록 쓸 말도 없어지고 제가 헛소리도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후반부 캐릭터들은 조금 내용이 중구난방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ㅠ;; 죄송합니다. 요즘 여유가 별로 없다보니 설정비화 쓰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져서...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것 같고, 힘을 내서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정말로 남은 것은 오마케 뿐인가요?
앞으로의 일정 말인데...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기약 없는 일정이 될 겁니다. 당장 저만 해도 조만간 학원에 다니기 시작할 것 같은데 이대로 잘 되서 빠르게 취직도 한다면(그랬으면 좋겠네요ㅠ) 게임 만들 시간은 더더욱 줄어드니...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 어나더 시리즈는 더이상 저만의 작품이 아니고, 또한 제 인생의 모티베이션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제 인생을 바꿔주었죠.
솔직히 제게 시간이 2년만 더 있었다면 후속작의 후속작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만...ㅋㅋ
이제는 만족했습니다. 후속작에서 가급적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쏟아 부었고, 많은 분들이 기뻐해 주시니 이 쯤에서 손을 떼는 것이 맞겠죠.
이렇게 말해도 티스토리 갱신 역시 이어나갈 생각이므로! 어나더 시리즈의 진정한 완결은 슈단나더의 완전판이 나왔을 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