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메이드 카페. 사지에 연결된 사슬이 타이라를 멋대로 움직인다. 손님으로 보이는 모노쿠마들이 연달아 주문을 시작하고, 사슬이 신체구조상 불가능한 방향으로 몸을 마구 비틀며 모노쿠마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준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모노쿠마 손님이 타이라에게 미소를 주문하고, 온몸의 관절이 부숴진 타이라는 억지 웃음을 지은 뒤 사슬에 휘감겨 사망한다.
단간론파 어나더가 2년간의 제작기간 끝에 막을 내린 끝에, 짤막한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으니 반드시 플레이를 끝마치신 분만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크롤 압박 있습니다!
(미스클릭용 공백)
우선 가장 먼저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어나더가 이렇게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어나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단간론파를 접한 뒤 잊을 수 없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것을 좀더 많은 분들께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당시엔 슈퍼 단간론파도 막 발매된 시점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단간론파라는 작품 자체가 국내에 그렇게 크게 알려졌다고 볼 수 없죠. 애니메이션화 이후로 인지도는 조금 올라갔지만 애니메이션은 분량상의 한계가 있었고, 원작인 게임은 언어의 장벽이 아무래도 높았으니까요.
실황 동영상으로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싶어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 번역 능력과 편집 기술... 그것도 공식으로 나온 게임을 무단으로? 그럴 배짱도, 능력도없었고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데서 시작한 것이, 제가 당시 다룰 수 있던 몇 안되는 게임 제작 툴인 쯔꾸르였습니다.
굳이 쯔꾸르2000인 이유는, 제가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익숙해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물론 어느정도 기술과 지식이 쌓인 지금은 무지 후회중이죠. 특히 옥신 님의 블로우백이 공개된 이후에는 더더욱이요(...) 뭣보다 투명색을 일일이 인덱스 색상으로 변환해서 지정해야 하는(Picture 폴더에 들어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포토샵의 땡땡이 무늬(?)같은 투명색은 인덱스 색상으로 변경시 그냥 하얀색으로 고정되어버려 일일이 투명색을 지정해줘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 눈아픈 연두색의 그 배경색이죠.) 데다가 그림 사이즈도 320x240이라는 오오토리 키만한 사이즈라 그래픽적인 제약이 이것저것이 아니었네요... 만약 후속작을 제작한다면 저도 그래픽적인 한계가 좀더 넓은 XP 이상의 쯔꾸르 틀을 써야겠습니다 ㅠㅠ..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제작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게임을 완성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완성까지의 스토리는 다 구상되어 있었지만 완성할 자신이 없었죠.
단간론파라는 작품 자체가 스토리가 매우 긴데다, 국내 인지도도 낮은 편이라 플레이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할까... 라는 생각이 앞섰거든요.
일단은 챕터1... 체험판을 완성시키고 배포하긴 했지만, 전 이 시점에서 "아 단간론파란게 이런 게임이구나~" 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단간론파 어나더를 제작한 보람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이 시점에서 본 목적은 완료된 셈이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어나더를 응원해주시기 시작했고, 저도 만들다보니 제 캐릭터들에게 애정과, 그리고 스토리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죠. 뭣보다 전 모든 걸 저 혼자 제작하는 상태였기 때문에(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이 아예 없는건 아니긴 하지만)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시간을 버려가며 제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현자타임도 계속해서 찾아왔습니다.
언제가 절정이었냐 하면, 여러분도 대충 느끼실 겁니다. 네, 다음 챕터까지의 기간이 오래 걸렸던 챕터들이죠. 챕터2 -> 챕터3, 챕터3->챕터4에서 가장 심했네요...
이 때는 이미 휴학계를 내고 알바와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군대는 안잡히지, 친구들이 놀자고 부르면 제작도 해야되는데 어떻게 해야되나 망설이게 되지...
그러면서도 또 스트레스 푼답시고 제작을 내팽겨치고 놀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작이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더 이상 이건 단순히 제 취미로 만드는 작품이 아니게 되었고, 시간을 버린다는 감각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새 챕터가 나올 때마다 점점 늘어나는 티스토리의 댓글... 문의 메일들...
나중에 알았지만 전용 스레드도 있더군요... 트위터 등지에서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 하나하나가 너무 감동이 되고 제작의 원동력이 되면서...
이렇게, 무사히 엔딩까지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래 게임을 만들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전부 그냥 시간 때우기 용도였고 뭐 하나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었는데,
무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작품만을 제작해 엔딩을 본 건 정말로 처음이었어요.
유저분들의 관심과 성원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다시금,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한마디 하자면, 어나더는 1인 제작 게임이 아닌 겁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만든 게임이니까용ㄴ래ㅓㅐ댜저랜ㅇㄹ오글거렼ㅋㅋㅇㄴㄹ
아...아무튼 이후는 제작 중간중간의 비화라도 적어보려고 합니다.
챕터1.... 솔직히 챕터1은,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게임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많이 허술한 면이 있죠. 15명의 캐릭터들도 제대로 된 설정집도 없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라 좀더 신경을 써줄걸... 하고 계속 후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캐릭터들의 이름 같은 건, 몇 명을 제외하면 대충 생각나는 아무 이름이나 붙였죠. 흔히 쓰이는 이름이라던가... 좀더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런 면에서 챕터2의 희생자였던 토모리의 이름이 절묘했던 것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뭐야 이거 나 초고교급 행운?
제가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고, 추리물도 많이 보지 못했던 탓에 정작 중요한 추리 파트에서 의아함을 느끼신 분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도 챕터2의 다잉 메시지는 좀 많이 무리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타가나같이 한정적인 지식을 단서로 끌여들였으니까요. 저와 유저분들이 일본인이었다면 몰라도 한국 게임에서 말이죠...
챕터6를 제외하면, 챕터2의 학급재판이 다른 챕터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긴데요, 아무래도 학생들도 많은 상태인 데다 페이크 범인(타이라)을 내세운 뒤 진범을 찾는 패턴이라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챕터3같은 경우는 챕터2에 비해 난이도가 대폭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들죠. 원래 이게 정상인 겁니다. 챕터2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난해한 거였고요.
사실 원작을 아시는 분이라면, 챕터1~4까지는 사소한 부분은 틀려도 전체적인 주제가 단간론파1과 슈퍼 단간론파2의 1~4챕터들의 오마쥬를 담고 있어서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엔딩이 이런 식으로 날 거라고 상상하신 분은 많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아니면 죄송합니다 ㅠ
챕터3~4를 만드는 즈음에 컴퓨터가 맛이 가기 시작해서 자료를 날린 적도 많고요... 정말 여러모로 여기서 포기할 뻔했는데, 그러지 않기를 잘했네요.
그리고 대망의 챕터5~6...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부분이죠. 여기서부터는 제작이 순풍에 돛단 듯 매끄럽게 진행됐습니다. 컴퓨터도 새걸로 샀고(...) 타블렛도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해 CG 작업속도도 늘어났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 남았었죠.
챕터4와 챕터5 사이의 간격만 봐도, 얼마나 그 전 챕터와 제작 진척도의 차이가 있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뭐 챕터 4야 아이들의 파티복 스탠딩을 전부 따로 그리고, 자유행동도 다 손보느라 오래 걸린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이건 꽤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서술합니다만,
어나더의 사망자와 생존자... 그리고 흑막... 엔딩...
이것들은 전부 챕터1 기획 당시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었고, 사소한 걸 제외하면 거의 바뀌지 않고 그 당시 머릿속에 있던대로 그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단지 바뀐게 있다면, 본래 하타노가 챕터3에 피해자로써 죽을 예정이었고, 이노리가 챕터2의 검정이 될 예정이었지만... 그 둘이 바뀐 것 빼고는 그대로네요. 이노리 같은 경우는 처형까지 구상해 놨었다가 아무래도 너무 캐릭터 붕괴가 심한데다 더 붕괴가 심한 캐릭터가 챕터3의 범인이라, 너무 범인들이 캐릭터만 붕괴되는 것 같아 계획을 갈아엎었습니다. 그 천사같은 이노리 성격에 도저히 검정으로 만들 수는 없었네요. 미안해 이노리야 ㅠㅠ
그걸 제외하면, 처음부터 최종 생존은 킨조, 메카루, 오오토리의 3인 체제였고(신호등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절대 노린게 아닙니다!) 마에다와 타이라의 운명은 정해져있는 상태였습니다...
엔딩 노래인 KOKIA의 I believe 같은 경우는, 평소에도 감명깊게 듣던 노래인데, 엔딩 노래로 사용하고자 한 것은 챕터5를 제작할 때 즈음입니다. 마에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결말을 정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가사까지 적절하다고 생각한 건 만들고 난 이후였습니다(...) 이것도 천운이라면 천운이네요(??)
음... 뭔가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쓰자니 생각나는게 없군요 ㅠㅠ..
아, 맞다. 여러분들께 사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래 원작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다는 문구를 게임 시작 때 적어놨었는데, 로고 이미지로 바꾸면서 어느 순간 사라졌더군요;; 게다가 챕터6에서 단간1, 슈단2 뿐만 아닌 절대절망소녀의 스포일러까지 들어가 버렸습니다.
생각보다 단1, 슈단2만 아시고 절절소를 아시는 분들은 적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게임에서 스포일러를 해버려서.. .으ㅏ아아아아아.. 죄송합니다 ㅠㅠㅠ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토와 시티에 관한건 그렇게 완전 중대한 스포일러는... 중... 중대...하긴 한데.. 어... 아무튼... 죄송합니다.. 모노쿠마에 관한 것만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은 생각나는 것도 없고, 스압이 길어지니 이만 줄이도록 할게요.
현재 CG 리메이크를 포함해 완전판 제작 중이니, 완전한 완성까지는 아직 남은 셈입니다!
그 때까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
이후, 캐릭터 별 추가 설정, 코멘트 등과,
조촐하지만 인기투표 이벤트 같은 것도 생각 중입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 읽으신 분이 계실지는 의문이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건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